퇴근길 편의점 앞에서 소화제를 집어 드는 손이 늘었다. 배달앱 화면에서 지방과 탄수화물이 과잉인 메뉴를 고르고, 식사 직후 의자에 붙어 앉는 생활이 굳었다. 속이 불편한 건 놀랄 일도 아니다. 문제는 불편함의 원인을 생활이 아니라 ‘성분 조합’으로만 돌리는 습관이 더 빨리 퍼진다는 점이다. 약 한 알이 이 모든 걸 정리해 준다는 믿음이 시장을 키웠다.
소화 과정은 단계가 다르다. 입에서 잘게 부서지고, 위에서 강한 산성 환경 아래 단백질 분해가 진행된다. 장으로 내려가면 분위기가 바뀐다. 지방과 탄수화물 처리의 무대가 된다. 그래서 프로테아제, 디아스타제, 리파아제 같은 효소 이름이 상품 설명에 등장한다. 표면만 보면 ‘맞춤’이라는 단어가 그럴듯하다. 고기 먹고 체했으면 단백질, 밀가루 먹고 더부룩하면 탄수화물, 튀김 먹고 답답하면 지방. 일상 경험과 언어가 딱 맞아떨어지니 설득이 쉬워진다.
다층정, 코팅 기술 같은 포장도 이 흐름을 강화한다. 위에서 녹을 성분과 장에서 풀릴 성분을 나눠 담았다는 발상 자체는 합리적이다. 일반 정제가 위에서 먼저 풀리면 장에서 작동할 성분이 제자리를 못 찾을 수 있다는 설명도 틀린 말은 아니다. 효소가 ‘어디서’ 나와야 하는지까지 고려한다는 메시지는 소비자에게 과학의 느낌을 준다. 짧게 말해, 잘 만든 이야기다.
불편한 지점은 여기서 시작된다. 효소 조합이 섬세해질수록 생활은 더 거칠어져도 된다는 면죄부가 따라붙는다. 과식-소화제-과식의 순환이 만들어지면, 위장보다 먼저 무뎌지는 건 경고 신호다. 속 쓰림, 트림, 구역감, 복부 팽만이 반복되는데도 “내 위가 단백질을 못 버틴다” 같은 단순 서사로 덮어버린다. 역류성 식도염이나 위염 같은 질환 가능성은 뒷전으로 밀린다. 검진 예약보다 택배 주문이 빠르다.
성분 이야기 역시 장사 논리와 붙으면 위험해진다. 담즙산 계열 성분이나 가스 완화 성분이 ‘해결사’처럼 소개될 때가 많다. 지방이 많은 식사 뒤 더부룩함을 설명하는 문장은 달콤하다. 반동성 속 쓰림, 장기 복용에 대한 경고는 작게 처리된다. 서울 강남의 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A씨는 “손님이 음식 사진 보여주며 이거 먹었으니 센 걸로 달라 한다, 속이 아니라 습관이 문제인 경우가 더 많다”라고 말했다.
소화제 의존을 경계하라는 조언은 단순한 도덕 훈계가 아니다. 증상이 잦아질수록 몸은 ‘약을 먹어야 정상’이라는 조건반사를 학습한다. 제산 성분이 포함된 제품을 무심히 반복 복용하면 속 쓰림이 더 신경 쓰이기도 한다. 약 자체가 나쁘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응급 처치로는 유용하다. 다만 응급 처치가 일상이 되면, 원인 규명과 생활 조정이 사라진다. 그 빈자리에 광고 문구가 들어선다.
소화는 위장만의 일이 아니다. 식사 속도, 수면 시간, 스트레스, 앉아 있는 시간, 수분 섭취 같은 변수들이 동시에 움직인다. ‘맞춤 소화효소’라는 말이 유행할수록, 맞춤이 필요한 건 오히려 생활 쪽이다. 불편함이 2주 이상 반복되거나 통증이 동반되면 약국 쇼핑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병원 문턱이 불편을 덜어줄 가능성이 더 높다. 효소의 시대가 열렸다는 말보다 먼저 떠올려야 할 질문이 있다. 지금 필요한 건 다층정인가, 아니면 습관을 바꿀 각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