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계약이 종료되었음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문제는 매년 반복되는 대표적인 임대차 분쟁 중 하나다. 특히 “다음 세입자가 들어와야 보증금을 줄 수 있다”는 집주인의 말은 많은 세입자들에게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하지만, 법적으로 반드시 따라야 하는 조건은 아니다.
임대차 계약의 기본 원칙은 명확하다. 계약 기간이 종료되고 임차인이 주택을 인도했다면, 임대인은 전세보증금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 새로운 세입자를 구했는지 여부는 보증금 반환 의무와 직접적인 법적 연관이 없다. 즉, 집주인의 자금 사정이나 후속 임대 상황은 세입자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이 핵심이다.
다만 현실에서는 집주인이 보증금을 다른 곳에 사용했거나, 후속 계약이 지연되면서 반환이 늦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세입자가 아무 조치 없이 기다리기만 하면, 반환 시점이 불확실해지고 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보증금 반환이 지연될 경우, 가장 먼저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은 내용증명 발송이다. 내용증명은 계약 종료일, 주택 인도 사실, 보증금 반환 요청 내용을 명확히 기록해 공식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다.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이후 분쟁 발생 시 중요한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
그 다음 단계로는 임차권등기명령 신청이 있다. 임차권등기명령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에서도 임차인의 권리를 등기부에 남길 수 있는 제도다. 이를 통해 세입자는 이미 이사를 나갔더라도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유지할 수 있으며, 집주인이 해당 부동산을 매매하거나 담보로 설정하는 데 제약을 줄 수 있다.
임차권등기명령은 법원을 통해 비교적 간단하게 신청할 수 있고, 보증금 반환이 완료되면 말소도 가능하다. 이 제도를 활용하면 세입자가 ‘집을 비워주면 권리가 사라질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보증금 액수가 크거나 집주인이 연락을 회피하는 등 분쟁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면 지급명령 신청이나 민사소송도 고려할 수 있다. 지급명령은 소송보다 절차가 간단하고 비용 부담이 적은 편이며, 집주인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중요한 점은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기록과 절차를 차근차근 남기는 것이다. 문자, 통화 기록, 계약서, 이사 완료 증빙 자료 등을 정리해 두는 것만으로도 이후 법적 대응이 훨씬 수월해진다.
최근에는 전세사기 문제로 인해 세입자 보호 장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보증금 반환 관련 제도도 점차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제도가 있어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보호를 받기 어렵다.
전세 계약이 끝났음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면, 막연히 기다리기보다는 상황에 맞는 제도적 수단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권리를 과하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에 따른 정당한 절차를 밟는 행위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